[교황 담화] 2018년 제55차 성소주일 교황 담화 “부르심을 듣고, 식별하고, 살 것”


                                             프란치스코 교황의

                                   2018년 제55차 성소주일 담화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식별하고, 살 것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는 10월에는 젊은이들에게 할애된, 특별히 젊은이들 사이의 관계에서 신앙과 성소를 다루는 제15차 세계주교대의원회(주교 시노드) 정기총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그 총회 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시는 기쁨의 부르심이 어떻게 우리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어떻게 “모든 세대의 남녀를 위한 하느님의 계획”을 우리 삶의 중심에 두어야 할지 심화시킬 것입니다(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5차 정기총회 예비문서, ‘젊은이, 신앙과 성소 식별’, 서문).

제55차 성소주일에 힘입어 다시 선포되는 기쁜 소식은 곧, 우리는 어떤 상황에 빠져있지 않고, 일련의 무질서한 사건들에 의해 끌려 다니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세상 안에서의 우리의 삶과 존재는 거룩한 성소의 결실입니다!

강생의 신비는 이 불안정한 우리 시대에 하느님께서 항상 우리를 만나러 오시는 분이라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시며, 때때로 우리 삶의 먼지투성이 길을 따라 지나가시고, 사랑과 행복에 대한 우리의 애끓는 향수를 이해하시며, 우리를 기쁨으로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개인적이며 교회적인 모든 성소의 다양성과 특수성 안에서, 높은 곳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의 재능을 열매 맺게 하시며, 우리를 세상에서 구원의 도구로 삼으시고 충만한 행복으로 이끌어주시는, 이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식별하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세 가지 측면(듣기, 식별하기, 살기)은 예수님의 사명 초기에 틀을 이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기도하시며 악마와 싸우신 다음,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의 회당을 방문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여기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시고, 성부께서 맡겨주신 사명의 내용을 식별하시며, “오늘” 실현하러 오셨음을 선포하셨습니다(루카 4,16-21 참조).

 

듣기

즉각 말씀으로 주어지는 주님의 부르심은 우리의 일상에서 느끼거나, 보거나, 혹은 만질 수 있는 많은 일들 가운데 하나처럼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자유를 전혀 방해하지 않으시고, 침묵 가운데 절제된 방식으로 오십니다. 따라서 그분의 음성은 우리의 지성과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는 수많은 걱정과 염려로 숨막히는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과 삶을 듣기 위해서는 미리 준비를 갖출 필요가 있고, 우리의 일상생활의 세부적 사항에도 주의를 기울이며, 신앙의 눈으로 일련의 사건들을 읽을 줄 알고, 성령의 놀라운 활동에 열린 자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각자의 습관 안에 갇혀 있다면, 자신의 자아(에고)라는 좁은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삶을 허비한다면, 유일하고 창조적인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 원대한 꿈을 꾸라는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의 무감각 속에 갇혀 있다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생각하셨던 특별하고 개별적인 부르심을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부르심을 받고 파견되셨습니다. 이 때문에 그분께서는 침묵 중에 묵상할 필요를 느끼셨고, 회당에서 말씀을 듣고 읽으셨으며, 성령의 빛과 힘으로 당신의 인격 자체에 대해, 그리고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 대해 언급된 그 말씀의 의미를 완전히 계시하셨습니다.

우리가 소란스러운 사회에 빠져있고, 우리의 일상에 밀어닥치는 정보와 자극이 넘치는 열광 속에 빠져있기 때문에, 오늘날 이런 태도는 한층 더 어려워졌습니다. 때때로 우리 도시와 우리 지역을 지배하는 외적인 소음은 내적인 혼란과 산만에 상응합니다. 내적인 혼란은 우리가 멈추어 서서 관상의 맛을 음미하지 못하게 가로 막습니다. 또한 진지하게 우리의 삶을 성찰하지 못하게 하며,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주의 깊은 계획에 신뢰를 두거나 그것을 충분히 식별하지 못하게 가로 막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하느님의 나라는 전혀 소란스럽지 않게 다가오며, 주의를 끌지 않게 옵니다(루카 17,21 참조). 엘리야 예언자처럼, 느낄 수 없을 정도의 잔잔한 신적인 미풍의 숨결에 영이 열리도록 놓아두면서(1열왕 19,11-13 참조), 우리 영의 심원으로 들어갈 때만 싹을 모을 수 있습니다.

 

식별하기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회당에서 예언자 이사야의 구절을 읽으시면서 당신께서 파견되신 이유, 곧 사명의 내용을 식별하셨으며, 메시아를 고대하던 사람들에게 이를 제시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같은 방식으로, 우리 각자는 단순히 영적 식별을 통해서만 자신의 성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식별은 “한 사람이 주님과 대화하고 성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자기 삶의 현실로부터 시작해 근본적 선택들을 해 나가는 과정을 말합니다”(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5차 정기총회 예비문서, ‘젊은이, 신앙과 성소 식별’, 제2장 신앙과 식별과 성소, 2. 식별의 선물).

특별히 그리스도인의 성소는 항상 예언적인 차원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이 입증해주듯이, 예언자들은 물질적으로 크게 불안정한 상황이나 영적∙도덕적인 위기상황에 하느님의 이름으로 회개, 희망, 위로의 말씀을 전하려고 하느님 백성에게 파견된 사람입니다. 예언자들은 먼지를 일으키는 바람처럼 주님의 말씀을 망각한 거짓된 양심의 안정을 뒤흔들고, 하느님의 약속이라는 빛으로 사건들을 식별하며, 하느님 백성이 역사의 어둠 속에서 여명의 징조를 깨닫도록 도와줍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 그분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장소, 도구, 상황을 발견합니다. 관념론과 운명론의 유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식별과 예언이 꼭 필요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삶을 “안에서 읽는” 능력을 발전시켜야 하며, 주님께서 당신 사명의 계승자가 되도록 어디서, 그리고 무엇을 위해 부르시는지 숙고하는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살기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현 시대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십니다. 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열중케 만들 것이며, 또한 다른 이들을 완고하게 만들 것입니다. 때가 차면 그분께서는 갇힌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시고,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시며, 모든 피조물에게 하느님의 자비 넘치는 사랑을 선포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기름부음 받으신 분, 이사야가 선포하신 메시아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0)고 단언하셨습니다.

하느님과의 만남과 형제들과의 만남에 우리를 개방시키는 복음의 기쁨은 우리의 굼뜸과 태만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항상 적절한 시간을 기다린다는 핑계로 창문에 얼굴만 내민다면 우리에게 기회는 오지 않습니다. 만일 오늘 선택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성소는 오늘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현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주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혼인을 통한 평신도의 삶으로, 사목을 통한 사제적 삶 혹은 특별한 축성생활의 삶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이 “오늘”은, 하느님께서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고 당신 사명에 참여시키시려고 계속 “내려오신다”는 것을 보증해줍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직접 섬기라고, 특별히 가까운 관계 안에서 그분과 함께 살고 그분의 뒤를 따르라고 여전히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그분의 나라에 전적으로 봉헌하도록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과 형제를 위해 항상 그리고 완전히 봉헌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며 큰 은총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계속해서 당신을 따르라고 부르십니다. 우리는 “저 여기 있습니다”라는 우리의 관대한 응답을 드리기 위해 완전해지도록 기다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한계와 우리의 죄에 대해 놀라지 말아야 하며, 열린 마음으로 주님의 목소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고, 교회와 세상 안에서 우리의 개인적인 사명을 식별하며, 끝으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사하시는 오늘에 그 사명을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사셨던 시골처녀,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우리의 여정에 언제나 우리를 동반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바티칸에서

2017년 12월 3일

대림 제1주일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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